한국 안 읽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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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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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읽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영문판인 것 같다. 이 책은 여러 언론 보도에서 대통령이 가장 감동받은 책으로 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대통령선거 후보 때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79년 대학교에 입학한 뒤 아버지(고 윤기중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추천했다고 한다. 그가 이 책을 더 열심히 들여다본 것은 2007년 일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을 할 때까지 책을 항상 갖고 다녔다. (…) 상부에서 이런저런 단속 지시가 내려오면, 프리드먼 책을 다시 읽어보고 ‘이런 건 단속하면 소비자의 선택할 자유를 침해한다'는 요약 보고서를 올리곤 했다.”(<매일경제> 2021년 7월19일) 이 내용을 1년 뒤 다시 보도한 기사는 조금 다르다. “2006년 중수부 연구관을 할 때 당시 (검찰) 상부에서 이런 거 단속하라, 저런 거 단속하라고 지시가 내려오는데, 프리드먼의 그 책을 보면 단속이나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매일경제> 2022년 5월13일)


<선택할 자유> 원서 ‘Free to Choose’는 미국에서 1980년에 나왔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이 출연한 15부작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원작이다. 미국에서 5주간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번역서는 1986년 협동연구사에서 <선택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현재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 찾을 수 있는 것은 ‘자유기업센터’에서 나온 2009년판부터다. 이때 제목은 <선택할 자유>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 뒤 2022년 개정판이 나왔다. 자유기업원은 자신들이 펴낸 책을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언급한 기록이 있는데,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다.


영문판을 읽었을 것 같다고 짐작하는 이유는 학자적 가풍 때문이다. 그리고 입학(1979년) 즈음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우세했지만 아버지가 프리드먼을 추천했다고 했는데 번역서 출간 전이다. 그리고 책 제목이다. 자신이 매일 들고 다닌 책 제목을 틀릴 것 같지 않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별로 책에 관심 없다는 것이겠다. 책 제목이 ‘선택의’든 ‘선택할’이든, 대학 입학 때든 졸업 때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20년 넘게(1980~2006년 또는 2007년) ‘인생 책’이 된다는 건, 그리고 2021년까지도 여전히 그렇다는 건, 그만큼 소중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활자매체에 관심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여전히 종이에 인쇄돼 나오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고 독자를 얻는 처지에서는 서운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추천한 책으로는 <반도체 삼국지>가 유일하다. 문재인 대통령 때처럼 베스트셀러가 될까, 하고 점치는 기사도 나왔다. 역대 대통령의 여름휴가쯤이면 ‘대통령의 추천책’이 기사화되곤 했다. 윤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안 읽었을 것 같다. 2023년 3월 대통령비서실에서는 대통령 취임 뒤 10개월간 도서 구매 내역이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백지 자료를 검토하는 사진을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책을 읽고 인사를 발탁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튜브 채널이었다. 그리고 지금 방송에 전력하고 있다. 어쩌면 출판산업 종사자들은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