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이스라엘-헤즈볼라, 피로 얼룩진 4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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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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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지난 23일(현지 시간) 레바논 전역을 약 650차례 공습해 레바논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시설 1600개 이상을 타격했습니다. 레바논 보건부는 최소 492명이 사망했고, 1645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습니다. 이에 헤즈볼라는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로켓 20발을 쏘며 대응했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폭격을 주고받으면서 양측은 2006년 이후 18년 만의 지상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들의 악연은 4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은 레바논 베이루트에 거점을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축출하겠다며 내전 중이던 레바논을 침공했습니다. 현지 강경파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레바논 남부 해안 도시 티레에 있던 이스라엘 국내정보기관 신베트 본부가 폭발해 9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레바논 남부 시아파 무장 이슬람주의자가 배후 세력으로 지목받았습니다. 전공(?)을 인정받아서일까요. 이들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듬해 헤즈볼라를 창설했습니다.


헤즈볼라는 이후 자살폭탄 테러를 적극적으로 자행했습니다. 1983년 4월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막사를 겨냥한 차량 자살폭탄 테러로 350여 명을 살해했습니다. 그 한 달 뒤에는 티레의 신베트 본부를 다시 공격해 이스라엘인 23명과 레바논 수감자 32명 등 약 60명을 숨지게 했습니다.


1990년 레바논 내전이 끝난 뒤에도 헤즈볼라는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습니다. 대(對)이스라엘 저항이 이유였습니다. 헤즈볼라는 오히려 레바논 국내 정치에까지 참여하며 세력을 크게 키웠습니다.


이스라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1992년 2월 레바논 남부를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이던 아바스 알무사위를 사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전선이 남미로 확대됐습니다. 알무사위가 사망한 한 달 뒤 주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에 폭탄테러가 발생해 이스라엘인 30명이 죽었습니다. 1994년에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85명이 희생됐습니다. 헤즈볼라가 두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았습니다. 당시 남미에는 레바논 출신의 시아파 이민자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2006년 7월 12일~8월 14일 전면전을 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사상자 10여 명이 나오고 병사 2명이 납치되자 이들을 구출하겠다며 레바논을 침공했습니다. 유엔의 중재로 끝난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 160여 명, 레바논에서 10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다만, 헤즈볼라는 당시 전쟁을 계기로 군사·정치적으로 역량을 크게 키우게 됩니다.


수시로 로켓 공격과 공습을 주고받으며 준전시 상태를 이어오던 양측의 분쟁은 지난해 10월 7일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됩니다. 헤즈볼라는 가자 전쟁 발발 직후부터 하마스를 지원한다며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했고, 이스라엘도 보복 공격을 가하며 양측의 충돌이 격화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듯 보입니다. 지난 7월 이스라엘군 표적 공습으로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가 사망한 데 이어 지난 17·18일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와 무전기 등 통신기기 수천대가 동시다발로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삐삐 폭발사건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내부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