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미·사우디 원자력 협정, 농축 가능성 열어두나…중동 핵 확산 우려
페이지 정보
본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민간 원자력 산업에 미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협정에는 양국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라 사우디 영토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할 가능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중동의 핵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30년간 적용되는 미국·사우디 민간 원자력 협정을 최종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협정은 미국 원자력 기업들이 사우디의 원자로와 관련 기반시설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틀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미국 원자력법 제123조에 따라 체결되는 이른바 ‘123 협정’은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 기술을 다른 국가에 이전하기 위해 필요한 협정이다. 미국 국무부가 협상을 담당하며 에너지부와 국가핵안보국, 원자력규제위원회 등이 기술·안전 문제에 관여한다.
공동 연구 뒤 미국 기업이 농축시설 건설 가능
이번 협정이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을 즉시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WSJ와 AP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사우디는 먼저 사우디 국내에서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안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공동으로 연구한다.
연구 결과 농축시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에 시설을 건설할 수 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미국 기업이 건설과 운영에 깊이 관여하는 방식으로 농축 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막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협정이 농축 기술 이전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협정이 핵연료 주기와 관련한 미국·사우디 협력의 법적 통로를 마련하지만, 미국 정부나 기업에 농축 능력과 기술을 반드시 이전하도록 의무화하지는 않는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이번 협정을 통해 자국 기업이 사우디 원전 시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도록 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국의 참여를 제한하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는 원자력으로 국내 전력 수요 일부를 충당해 발전에 사용되는 석유를 줄이고 원유 수출 여력을 확대한다는 구상을 추진해 왔다.
미국과 사우디는 2025년 11월 민간 원자력 협상 완료를 알리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당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해당 합의가 우라늄 농축이나 핵무기와 관련된 것은 아니며 비확산 원칙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최종 협정에는 사우디 국내 농축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도록 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가 협정에서 빠졌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신고 시설에 대한 불시 사찰 등 강화된 검증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추가의정서도 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사우디 정부는 보도 시점까지 최종 협정 내용을 공식 공개하지 않았다.
UAE ‘농축 포기’ 협정과 대조
사우디와 인접한 아랍에미리트(UAE)는 2009년 미국과 123 협정을 체결하면서 자국 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한국의 지원을 받아 바라카 원전을 건설했으며, UAE의 협정은 민간 원자력 협력의 ‘골드 스탠더드’로 평가받아 왔다.
사우디 협정이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중동 국가들도 농축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라늄 농축 자체가 곧바로 핵무기 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농축도를 높이면 핵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을 생산할 수 있어 핵 확산 문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2018년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핵무기를 원하지 않지만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사우디도 뒤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사우디에 농축 능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 의회와 비확산 전문가들의 주요 근거가 됐다.
라이트 장관은 미국의 기술과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협정이 높은 수준의 원자력 안전과 비확산 기준을 따를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비확산 전문가들과 일부 미국 의원들은 농축 금지와 강화된 IAEA 사찰이 명문화되지 않으면 사우디의 평화적 이용을 장기간 검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협정은 양국 에너지 장관의 서명과 미국 의회 제출을 앞둔 것으로 보도됐다. AP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승인했지만 공식 발표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르면 22일 공개될 수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123 협정은 의회에 제출된 뒤 약 90일간의 연속 회기 심사를 거친다. 의회가 협정을 막으려면 상·하원에서 공동 불승인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하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 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 이전글EASA, 요르단 전 고도 운항 중단 권고…8월 말까지 적용 26.07.23
- 다음글달러당 195만 리알…전쟁 장기화에 이란 경제 충격 확산 2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