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100년 넘게 가꾼 석류밭 밀었다... 아프간 농민들이 양귀비 심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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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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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등 외신들 농민들 참상 보도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마약재배’ 선택

20년 전쟁 끝에 다시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간 비탄의 땅, 아프가니스탄. 이 나라를 상징하는 두 가지 작물이 있다. 우선 석류.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살아온 아프간 민초를 상징하는 토종 작물이다. 특히 아프간의 참상을 지구촌 독자들에게 알린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 석류나무는 주인공 아미르의 삶이 물결치는 곳곳에서 등장한다. 석류가 아프간인들의 꿋꿋한 기질과 희망을 말해준다면, 정반대의 암울한 현실을 말해주는 작물도 있다. 바로 양귀비다. 소련 침공을 거쳐 탈레반 등 극단주의자들의 소굴로 전락하면서 아프간은 양귀비 재배를 통해 지구촌 아편의80%를 공급하는 마약공장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탈레반 치하에 들어간지 넉달째로 넘어간 아프간에서 다시 씁쓸한 소식이 들려왔다. 가난한 농민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대대손손 일궈왔던 석류밭을 밀어버리고 양귀비 재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주에 사는 여든 살 농부 압둘 하미드의 사연을 소개하며 이 같은 상황을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하미드는 지난달 고이 길러오던 800여 그루의 석류나무를 모두 뽑아버렸다. 가족이 대를 이어 100년 넘게 가꿔왔던 석류 과수원은 이제 나뒹구는 야적장처럼 휑해졌다. 그는 이 가업을 왜 포기했을까? 우선 몇해째 이어지는 극심한 가뭄으로 작황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

관개 시설만 제대로 갖춰져있더라도 어느정도의 농사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랜 내전과 무능한 정부, 부패하고 타락한 관료 시스템 하에서 그런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렇게 하미드와 같은 천생 농민들은 삶의 막장으로 내몰렸다.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지는 하나였다. 바로 ‘확실히 돈이 되는’ 양귀비 재배였다. 탈레반 집권 후 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일반 농가가 아편 재배에 나서는 것은, 이런 흐름이 전국적 현상이 될 수 있는 불길한 전조일 수 있다고 NYT는 진단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힘든 석류 농사를 마무리한 쉰 네 살의 농부 모하마드 오마르는 “내년부터는 이 자리에 양귀비를 재배할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이런 흐름은 집권 뒤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활동하겠다고 했던 탈레반의 호언장담을 무색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탈레반은 2001년 미 주도 연합군에 의해 축출당한 뒤 20년간 반군으로 활동하면서 양귀비 재배와 아편 밀수출을 통해 자금줄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지난 8월 친서방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뒤에는 국제 경제 편입을 공언하며, 아편에 의존한 지하 경제와는 거리를 둘 것이라고 여러 번 공언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게 전개됐다.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 인접국 등 극히 일부국가를 제외한 국제사회는 아직 탈레반에 대한 승인을 미루고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금도 탈레반의 손아귀에 넘어간 아프간 중앙은행이 아닌 제3의 루트를 통해 난민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통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탈레반의 돈줄은 여전히 대부분 동결이나 제재 상태로 묶여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탈레반은 최근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읍소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시 총리역할을 맡고 있는 탈레반의 하산 아쿤드는 지난 27일 국영방송을 통해 첫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여성인권 탄압문제를 의식한 듯 “교육은 여성에게도 의무”라며 현재 등교가 봉쇄된 여학생의 등교를 순차적으로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여성들은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이 여성을 앞세우면서 현실과 괴리된 주장을 펼친 것은, 그만큼 국제사회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묶인 자금줄을 풀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 그래도 허약했던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심각한 민심이반에 직면할 것을 우려한 탈레반의 이 같은 유화적 제스처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상 농민과 여성 등 약자들의 고통은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그 불길한 전조가 바로 양귀비를 재배하기 위해 처참하게 갈아엎어진 석류밭이라는 것이다.|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