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그 남자’ 와 ‘그 여자’만 쓰던 프랑스어, ‘제3의 성’ 대명사 사전등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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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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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프티 로베르’ 사전 온라인판 새 인칭대명사 등재

젊은층 새 조어 사용…마크롱 대통령 부인 반대뜻 표명에 ‘시끌’


프랑스어 사전에 최근 일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쓰이는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3의 인칭대명사가 정식 등재되자, 프랑스에서 이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거세다.


프랑스어 사전 ‘르 프티 로베르’는 지난달 온라인판에 남성 인칭대명사 ‘il’(그 남자)와 여성 인칭대명사 ‘elle’(그 여자)의 합성어 ‘iel’(그 사람)을 성별 구분없이 사용할 수 있는 3인칭대명사로 처음으로 표제어에 올렸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원래 프랑스어의 3인칭 대명사는 남성을 가리키는 ‘il’과 여성을 가리키는 ‘elle’뿐이며, 영어의 ‘it’ 또는 ‘they’에 해당하는 중성 대명사가 따로 없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을 경우엔 남성 대명사의 복수형 ‘ils’가 쓰인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일부에서 남·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가리키는 조어 iel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르 프티 로베르는 이 iel에 대해 “성에 관계없이 단수와 복수로 사용되는 3인칭 대명사”로 정의했다.


이에 대해 전통주의자들은 “프랑스어 전통의 훼손”이라며 반발했다. 쟝-미셀 브랑케 교육부 장관은 “포괄적인 용어 사용은 프랑스어의 미래가 아니다”며 학교에서 iel이란 말이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도 “우리 말에는 그 남자와 그 여자, 이렇게 두 종류의 대명사가 있다”며 “우리 언어는 아름답다. 두 대명사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같은 중도보수 정당의 프랑수아 졸리베 의원은 “르 프티 로베르의 선택은 이른바 ‘포괄적인’ 용어를 우리 언어에 들여놓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의 가치를 파괴하는 (미국의) 워키즘 이데올로기의 도래를 알리는 전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워키즘은 보수진영에서 인종과 성평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진보운동을 폄하하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반면, 생물학적 성구분을 거부하는 파리 8대학의 학생 릴리앙 델롬은 브리지트 마크롱의 발언에 대해 “나에게는 매우 폭력적”이라며 “퍼스트 레이디이며 여성이며 프랑스어 교사였던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절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파리3 대학에서 성문제를 가르치는 그웬나엘르 페리에는 “포괄적인 용어를 공격하고 iel을 공격하는 것은 반여성주의의 손쉬운 표현”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르 프티 로베르의 총국장인 샤를 빔베네는 성명을 내어 “사전의 임무는 어떤 용어가 쓰여야 한다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iel이란 말을 쓰고 싶어하던 그렇지 않든 간에, 그 말의 뜻을 분명히 밝혀 두는 것은 유용한 일”이라며 “르 프티 로베르의 임무는 변화하고 다기화하는 프랑스어의 진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