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女權 보호” 약속 탈레반, 카불대서 女교수·학생 내쫓고 ‘매음굴’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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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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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집권 땐 여성 문맹률 86%까지… 어머니들, 몰래 딸들 가르쳐

당시 카불대 총장 “여학생들 등굣길 괴롭힘 막도록 버스 있다면…”

줄 없이 바이올린 익혀 연주회도… 배움에 목숨 거는 이들이 희망



작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은 미국 대표에게 세 가지를 약속했다. 자신들이 집권하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력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포용적 정부를 꾸리고, 인권, 특히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탈레반이 집권했을 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전쟁을 마무리하고 전열을 정비해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원하는 미국은 이 약속을 받고 철군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다시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IS의 테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심지어 탈레반 일부의 IS 결탁 의혹도 있다. 9월 초 구성된 과도 내각은 죄다 탈레반 인사로만 채워졌다. 무엇보다 여성 인권 탄압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카불 등지에서 여성들의 교육이 제한받기 시작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2009년 카불 출장의 여운은 길었다. 당시 대선을 앞둔 아프가니스탄은 어수선했다. 세속 민주 정부가 세워진 지 8년 넘는 즈음이었음에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민족, 정파 갈등은 여전했고, 탈레반 잔당의 선거 훼방 테러도 만만찮았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투표 열기가 뜨거웠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적극적 활동이 눈에 띄었다.

하미둘라 아민 당시 카불대 총장과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지정학 교수인 그는 카불대학 근무 시절, 학문적 자유를 억압하는 소련을 피해 호주로 갔다. 그곳 대학에서 재직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소련은 물러났지만 이후 탈레반이 권력을 잡았기에 돌아올 수 없었다. 탈레반이 물러나자 고국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카불대학 총장을 맡았다. 탈레반이 망친 여성 교육 때문이었다.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대화 중 계속 흘러나왔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집권했던 탈레반은 여성 교육을 봉쇄했다. 여교사들은 해직되었고, 여학생들은 집에 갇혔다. 여성의 본분을 가사와 출산으로 규정했다.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이슬람 계율을 어기면 탈레반은 매질은 물론 처형도 일삼았다. 공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당시 86%의 아프간 여성이 문맹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글을 몰랐다. 그러나 14%에 눈길이 간다. 글을 아는 어머니들이 문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린 채 딸들을 가르쳤다. 엄혹한 시절, 5만여 여학생이 탈레반의 눈을 피해 몰래 글을 배웠다고 한다.


탈레반 실각 이후 아민 총장은 이들을 중심으로 여성 고등교육의 물꼬를 텄다. 공부하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학생들을 발굴해 학교로 이끌었다. 세계 각지 대학을 다니며 장학금을 유치, 우수한 여성 제자들을 해외로 유학 보냈다.


대화를 마칠 무렵이었다. 총장은 갑자기 한국 정부나 기업에서 대형 버스를 기증해주면 좋을 것이라며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왜 뜬금없이 버스 이야기를 꺼냈을까? “인 교수, 여전히 탈레반 성향의 사람들이 카불 곳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길목에 서 있다가 등교하는 여학생들에게 테러를 가합니다. 대중교통수단이 마땅찮으니 학생들은 수킬로미터를 걸어오는데 위험해요. 버스가 많이 필요합니다. 저라도 구석구석 다니며 공부하려는 여학생들 태워오고 싶어요.”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내 손을 잡아끌어 총장실 옆 강의실로 데려갔다. 남학생들로 가득한 강의실 한구석에 여남은 여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감동이 있었다. 위험 무릅쓰고, 생명 걸고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었다.


후일 그의 다른 인터뷰를 읽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열렸던 음악회 이야기였다. 한 여학생이 바이올린 독주를 했다. 모두들 놀랐다. 탈레반이 여성 교육은 물론, 음악도 금지시켰는데 어떻게 바이올린을 익혔는지 궁금했다. 그 여학생은 지하실에서 줄 없는 바이올린을 들고 상상 속에서 소리를 들으며 연습했다고 했다. 연주회장에 모인 이들이 감동받았음은 물론이다.


2021년 말 아프가니스탄은 안타깝게도 암흑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 다시 등장한 탈레반은 지난 20년간 아프간 여성들이 힘겹게 쌓아올린 탑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말로는 국제사회와 협력하겠노라며 이슬람 원칙하에 여성 교육을 장려한다지만 미덥잖다. 기준도 모호하고 여학생 등교를 금지한 학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탈레반의 지역별 성향에 따라 편차가 있다. 일부 지역의 온건 탈레반들은 여학생들의 교육을 허락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 전체의 교육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은 카불대학이다. 탈레반 강경파 출신 30대 신임 총장은 취임 직후 여교수들을 해직시키고 여학생들을 쫓아냈다. 남녀가 함께 다니는 학교를 매음굴이라 비하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대학총장에 임명한 탈레반의 공언을 어떻게 신뢰할까. 웬만한 정책은 품을 들이면 바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다르다. 제아무리 현인이 등장하여 방향을 잘 잡아 바꾸더라도 수년 내에 정상화되기 힘들다. 마치 모판의 모종을 망치는 것과 같아서 한 세대를 무너뜨린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다시 본다. 여학생들은 당당히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전 탈레반 치하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뜻있는 교사들이 몰래 여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여성들은 다시 부르카로 얼굴과 온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우려는 열정까지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여 년 전, 숨어서 글 배우고, 숨죽이며 몰래 책 읽던 10대 소녀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는 열강의 경쟁이나 국내 정치 세력 싸움에 달려있지 않다. 극단주의에 무릎 꿇지 않은 남겨진 이들에게 달려 있다. 무수한 하미둘라 아민 총장들과, 소리 없이 숨어 활 켜던 바이올린 연주자들, 숨죽이며 책을 읽던 여학생들이 아프가니스탄 구석구석에 있으리라 믿는다. 배움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여학생들이 이 나라의 희망이다.|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