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변보호자 살해' 피의자 체포 안한 이유…경찰 "도주 우려 없어서"

페이지 정보

작성일 21-12-16

본문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의 부실대응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해명에 나섰다. 경찰은 최근 송파구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피의자 이아무개(26)씨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첫 성폭력 신고 접수 당시 신병 확보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피의자가 임의동행에 임했고 휴대전화 임의제출도 순순히 했다. 주거지나 전화번호 등을 확보했기 때문에 체포 영장을 받기 위한 긴급성이 없었던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피해 여성의 아버지가 딸이 감금된 것 같다며 서울 강남 지역에서 처음 신고했다. 딸의 위치는 충남 천안으로 잡혔으나 그곳에 없었다. 현장 관계자가 딸과 이씨가 대구로 갔다고 전해 두 사람을 대구에서 찾았다.


피해 가족이 이씨를 성폭행과 감금 등으로 신고해 이씨에 대한 입건 전 조사가 이뤄졌지만, 현행범 또는 긴급 체포 여건은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경찰은 귀가조치했다. 이 결정은 해당 사안을 넘겨받은 천안 서북경찰서에서 지난 7일 오후 3시에 이뤄졌다. 피해 여성은 지난 7일 신변보호 대상으로 등록돼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그러나 이씨로부터 피의자신문조서를 받는 등 경찰 후속 조사가 이뤄지기 전, 첫 신고 나흘 만에 이씨는 피해 가족의 주거지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이에 피해 여성의 어머니가 숨지고 남동생이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피해 여성의 신변보호 여부를 결정할 때 개선된 최신 체크리스트를 활용했으나 당시에는 신변보호 대상을 가족까지 확장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긴급체포를 잘못하면 직권 남용 등 사례가 많다. 긴급성, 상당성, 중대성 등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퍼즐을 맞춰보니 이런 상황이 있었다, 그때 (신병확보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부분도 있으나 당시에 대구에서 판단했을 때는 요건이 안 됐다"고 재차 설명했다.


이씨의 휴대전화는 대구에서 임의제출돼 현재 포렌식 중이다. 경찰은 이씨가 피해 가족의 집주소를 알게 된 경위 등에 대해 추가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향후 수사계획에 대해 "밝혀진 모든 사실에 대해 한 점 의심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희생된 국민에 명복을 빌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피해자 가족과 피해자가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 청장은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게 경찰의 기본 사명인데,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국민께 걱정과 불안을 드린 점에 대해 항상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앞으로 더더욱 면밀하게 점검하고 확인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발전시켜서 아까운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 안전을 위한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청장은 근본적으로 신변보호 제도 등과 관련한 예산과 인력, 법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청장은 신변보호와 관련해 스마트워치 지급, 112 시스템 등록, 주거지 등 정기적으로 순찰 강화 등 세 가지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신변보호 대상자 선정 위험성 체크리스트 문안도 바꾸고 개선 방향도 마련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도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스토킹처벌법 등 현행 법제로는 경찰이 가해자를 사건 발생 초기에 조치할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처럼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접근금지도 할 수 없었다"며 "업무는 폭증하는데 똑같은 인력과 조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법제도와 인력, 예산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검토되고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