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사우디 "바둑 육성하고 싶다".. 한국에 협조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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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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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높일 문화 사업으로 선택

정부·지원자 등 모두 열의 대단

바둑지도사 초빙 강사 김명완 8단

"바둑 세계화 이룰 좋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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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완 8단이 사우디아라비아 바둑 지도자 지망생들을 상대로 다면기를 두고 있다. 사우디는 문화 정책 수단으로 바둑을 선택하면서 한국에 협조를 제안했다. /김명완 8단 제공



아랍권 석유 부국(富國)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둑 보급에 뜻을 두고 한국 프로 기사 김명완(44) 8단을 첨병(尖兵)으로 선택했다. 사우디 정부 초청으로 지난달 설 연휴 직전 수도 리야드를 열흘간 방문하고 돌아온 김 8단에게 ‘바둑 불모지’ 사우디의 변화 움직임을 들어보았다.


“사우디는 몇 년째 ‘비전 2030′이란 거대한 국가 개조 사업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석유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 산업 구조 전환, 미래형 스마트 도시 건설 등이 목표죠.” 바둑은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이 대상인 ‘삶의 질’ 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삶의 질’ 부문 예산만 42조원에 이른다네요.”


사우디 정부에서 작업을 의뢰받은 중동권 최고 권위의 압둘아지즈 대학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마인드 스포츠로 바둑 체스 브리지 세 종목을 선택했다. 그런 뒤 바둑 보급 사업을 논의할 선진국 전문가로 김 8단과 미국 출신 일본 프로 마이클 레드먼드 9단 둘을 놓고 고심하다 김 8단을 낙점했다.


열흘간 그에게 맡긴 1차 임무는 바둑 지도사 양성 교육이었다. 완전 불모지이다 보니 우선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고, 그 1차 선발 작업을 김 8단에게 의뢰한 것. 교육 이수자 12명은 앞으로 20명씩 ‘제자’를 배출, 경기 인구를 늘려가게 된다. 김 8단은 하루 6시간씩 바둑의 개념, 기술, 실전 대국을 가르쳤다.


“그래도 기초는 알고 지망했겠지 했는데 모두 완전 맹탕이라 고생 좀 했습니다.” 2018년까지 10년간 머물렀던 미국 시절 경험을 살려 교재를 새로 만드는 등 정성을 다했다. 수강생들은 항공료 및 호텔 숙박비 등 경비 일체를 면제받았다. 20대 초반~50대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 전직 체스 챔피언, 국방부 직원 등 직업 분포도 다양했다.


“서른두 살 전기 기술자 술탄은 휴가를 내 참가했더군요. 바둑 배워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었더니 ‘형제가 17명, 조카는 50명이 넘는데 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려고 지원했다’고 해요. 새로운 보급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저 혼자 무릎을 쳤습니다(웃음).”


사우디 바둑 프로젝트 책임자인 킹 압둘아지즈 대학 마제드 알하르티 박사도 처음 접한 바둑의 묘미에 빠져 매일 수업에 참가했다. 그는 “한국 프로 기사들을 계속 초빙하고 싶다. 일정 기간 집과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를 제공할 수 있다. 사우디와 한국기원이 협약을 맺어 바둑을 지속적이고 효율적으로 보급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사우디의 바둑에 대한 의욕은 놀랍습니다. 제가 도착하기 전 교재도 그들 스스로 제작했을 정도인데, 초보자들이 만든 입문서치곤 꽤 공을 들였더군요.” 김 8단은 2년 전 아랍에미리트(UAE)와도 교류 방안을 논의하다 코로나 확산으로 중단된 상태라며 “사우디는 코로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뒤의 사우디 모습이라며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처음엔 허풍이 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 며칠 직접 둘러보면서 규모와 호화로움에 여러 번 놀랐습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체험장이 리야드 시내 번화가에 등장했을 정도로 한국 문화와도 친숙하다고 했다.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 중인 부자 나라가 정부 차원에서 바둑을 배우겠다는데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요? 양국이 서로 도울 일이 많을 것 같고, 제 역할이 필요하다면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까마득해 보이던 바둑 세계화도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요.”ㅣ조선일보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