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아카데미 인기상, 대중이 직접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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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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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최대 영화상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측에서 상식을 깨는 방침을 발표했다. 3월 28일(현지시간) 열리는 이번 제94회 시상식에서 일반대중이 직접 투표하는 인기상을 신설하겠다는 것. 누구든 트위터로 #oscarsfanfavorite 해시태그를 달고 지난해 최고라 여긴 영화제목을 적어 3월 3일까지 포스팅하면 이를 집계해 시상하겠단 방침이다. 이번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은 영화여도 관계없다.


현재까지 투표는 대부분 팬덤이 크고 충성도 높은 영화들로 채워지는 추세다. 마블 팬들 지지가 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DC 팬들을 고조시킨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원작소설 팬 베이스가 탄탄한 ‘듄’ 등이다. 한편 가수 겸 배우 카밀라 카베요가 주연한 ‘신데렐라’도 자주 포스팅된다. 영화 자체는 로튼토마토 지수 42%로 졸작 수준이지만 카베요 팬덤이 대거 몰아주기에 나선 탓이다. 초반부터 뭔가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이처럼 아카데미상이 난데없이 인기상까지 신설하게 된 이유야 사실 간명하다. 아카데미상은 계속 인기가 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시청자 1040만 명으로 전년도 대비 58%나 폭락했던 지난해 시상식은 코로나19 팬데믹 탓으로 칠 수도 있다. 대중문화계 화제성 자체가 저하된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전년도 역시 당시로써 역대 최악의 시청률을 보였단 점이다. 그렇게 아카데미상 시청률은 2014년 이래 꾸준히 하강 곡선을 그리는 추세다. 이러니 일반대중이 직접 투표해 연대감을 키우는 인기상 발상도 통과되고 있는 셈.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살펴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아카데미상 인기가 근 수년래 폭락한 원인 분석. 각종 미디어환경 변화 외에 주로 지목되는 건, 이제 아카데미상 후보지명과 수상을 좌우하는 ‘힘’은 투표권을 지닌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에만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트위터 여론, 그중에서도 ‘깨어있는 시민’ 정도에 해당하는 ‘Woke’ 집단의 여론에 달려있다는 것. 이들은 대부분 극단적 PC(Political Correctness) 사고로 트위터 여론을 조성, 아카데미상 투표권자들에 압력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여론 조성 핵심은 가장 뛰어난 영화, 뛰어난 배우 등에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상을 받기에 ‘올바른’ 영화, ‘올바른’ 배우 등에 줘야 한단 논리다. 다분히 PC적 관점에서 영화에 결격사유(?)나 이런저런 논란거리가 없어야 하고, 감독과 배우, 각본가 등에 이르기까지 사생활 면에서 도덕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것. 이에 더해 소수인종과 소수자 문화 등에 대한 배려도 가히 ‘소수자 파이’에 가까울 정도로 보장돼야 한단 입장이다.


이런 식이면 적어도 상 자체의 대중적 인기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대중적 붐을 일으킬 만한 될성부른 영화들을 눈치껏 밀어주기도 어렵고, 핫하게 떠오르는 신예에 수상의 날개를 달아줘 미래 할리우드를 지탱할 스타로 키워내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상 자체가 엔터테인먼트 역할이라기보다 거의 사회적 역할에 가까워지니 그만큼 ‘재미’도 ‘인기’도 떨어진다.


한편, 이런 조건에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저 인기상이 사실상 ‘팬덤상’으로 변질해가는 점도 더 짚을 만하다. 사실 이 같은 분위기는 일반대중 투표를 받는 또 다른 미국영화상, 피플스초이스상이나 MTV영화상 등의 흐름으로도 어느 정도 예견됐던 부분이다. 이전까진 이들도 당대 상업영화 유행과 시대 분위기 면면을 확인해볼 수 있단 점에서 꽤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세븐’ ‘스크림’ ‘매트릭스’ ‘화씨 9/11’ 등 아카데미상에선 소외된, 그러나 많은 점에서 ‘시대정서’를 더 잘 드러내 주는 영화들이 최고상을 타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도 서서히 ‘팬덤화’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팬덤이 형성된 인기영화 속편, 원작 만화/소설 팬 베이스가 큰 영화들이 최고상을 타가기 시작했다. 당장 지난해 12월 제47회 피플스초이스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부문 최고상은 ‘블랙 위도우’가 차지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등에 비해 흥행성적도 떨어지고 대중반응(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 평점 6.7)도 썩 좋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마블 ‘어벤저스’ 세계관에 등장한 덕에 개중 가장 팬덤이 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많건 적건 아카데미상 인기상도 결국 ‘이런 식’이 되리라 예상해볼 수 있다.


위 두 가지 측면 모두 한국선 ‘이미’ 벌어져 온 현상이다. 인터넷 공간서 웬만한 연예인 발언이나 행적, 심지어 가족관계까지 들춰가며 보이콧 분위기를 끌어내는 흐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소위 ‘문제적 콘텐츠’에 대한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그게 합당한 수준을 넘어, 때론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경우처럼, 제목이나 설정 정도만으로도 보이콧 양상을 보인다는 게 문제다. 각종 콘텐츠 팬덤 현상도 그렇다. 지지하는 영화 흥행성적을 올리려 ‘영혼 보내기’ 등은 물론이고, MBC ‘무한도전’처럼 예능프로그램 팬덤 현상까지 일어나 인터넷 게시판을 뒤덮는 경우도 이미 겪어봤다. 이게 이제 ‘전 세계적 추세’로 가고 있단 얘기.


흥미로운 건, 위 두 신종 흐름이 사실상 서로 대립하는 입장이란 점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팬덤’을 제어하려 하고, ‘팬덤’은 ‘정치적 올바름’을 누르려 한다. 그럼 향후는 어떨까. 이중 대중문화의 전반적 ‘팬덤화’ 현상에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팬덤이 곧 대중성”이란 주장은 사실 K팝계 중심으로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뉴미디어 폭발로 소수 미디어 독점시대의 ‘누구라도 다 아는 스타’들은 사라지고, 그저 팬덤이 가장 큰 아이콘이 곧 가장 대중성 있는 아이콘으로 지목되는 시대란 얘기다. 이 흐름이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런 점에서 위 둘의 대립 중 먼저 사라질 것은 ‘정치적 올바름’ 필터일는지 모른다. 지금은 둘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기에 점점 출구가 좁아지고 그만큼 분위기가 저하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대로 머물진 않을 듯 보인다. 이미 K팝계에서부터도 그런 신호들이 나온다. 각종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켜온 카밀라 카베요의 ‘신데렐라’가 아카데미상 인기상 투표에서 기염을 토하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세상은 전체주의적 당위 차원인 ‘정치적 올바름’ 코드에서 점차 팬덤이란 이름의 ‘정체성’ 코드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일 수 있다. 이번 아카데미상 인기상 향방도 이를 가늠해보는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스포츠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