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일쇼크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한국 경제 ‘시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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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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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한국 경제의 향후 흐름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예측을 위한 전제 자체가 불확실해서다.


한국은행 조사국장 출신의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항상 경제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크다. 실물 경제가 받을 충격의 정도를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거시경제 정책의 두 기둥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도 쉽게 방향을 잡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물가를 잡으려다 경기를 수렁에 빠뜨릴 수 있고, 경기를 떠받치려다 물가와 시장금리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블랙박스 ‘러시아 리스크’



전문가들은 러시아 리스크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와 한국 사이를 매개하는 유럽과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러시아와 어느 정도로 엮여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숨겨진 ‘거래상대방(카운터파트) 리스크’가 크게 표면화될 경우 예상보다 큰 금융 불안과 그에 따른 실물 경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국은행 핵심 간부는 “경제가 세계화되고 금융기관 간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가 많아진 점을 염두에 두면 1998년 러시아 디폴트 사태보다 그 충격이 더 클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연관성’이 명백히 파악되지 않는 데 있다”고 밝혔다. 유럽과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러시아 국채나 원유 등 원자재를 기반으로 만든 파생상품이 금융 부실의 뇌관으로 떠오를 여지도 있다.


일부에선 러시아 국채의 첫 만기가 돌아오는 16일이 지나면 블랙박스에 싸인 러시아 금융의 연결고리가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국채 상환을 받지 못한 금융회사 등 투자자들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얼마나 넓고 깊게 러시아 리스크가 서방세계에 침투해 있는지 윤곽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한계’는 뚜렷하다. 장민 위원은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투명한 거래보다는 장부상 안 보이는 거래가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는 더 높게, 경기는 더 나쁘게



분명한 건 지난해 한국은행과 정부는 물론 민간기관이 내다본 대로 올해 한국 경제가 흘러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점이다. 전망의 전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가장 큰 돌출 변수로 국제유가를 꼽는다. 이미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가 올해 경제 전망을 할 때 전제로 삼은 국제유가는 배럴당 73달러(연평균)였다. 이근태 엘지(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워낙 불확실성이 커서 어디까지 (유가가) 간다고 전망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이 검토 중인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처가 실제 단행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의 증산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배럴당 150달러도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일부에선 고물가를 동반하는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해 나타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두 분기 연속 역성장이 나타날 때를 경기 침체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이런 전망은 섣부른 감이 있는 진단이지만 그만큼 높은 수준의 물가와 경기 둔화는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근태 위원은 “애초 올 상반기까지는 경기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지만, 현재로선 당장 경기가 꺾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한국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응도 딜레마에 빠지나



전문가들은 거시경제 정책의 두 축을 맡은 정부와 한은이 자칫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물가와 경기 중 어느 쪽도 내다 버리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면서 정책당국이 복잡한 방정식을 앞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가 급랭되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방어할 수 있지만 고물가가 높게 지속된다면 (정부가) 추경 규모를 크게 가져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태 위원은 “코로나19 대응으로 정부 재정적자가 크게 불어난데다, 현재 상황이 수요 위축이 아니라 공급 충격이 더 큰 문제인 터라 정책 대응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획재정부의 핵심 간부는 “(통화정책과의) 절묘한 정책 조합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