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OTT 껴안고 차별 버렸다..오스카 변혁이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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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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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회 아카데미, 차별 논란 고심한 흔적 여력

OTT 받아들인 것 아닌 힘 인정한 것

넷플릭스 보이콧 칸에 영향 미칠까



늦었지만 놀라운 변화다. 2년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쓸며 할리웃 보수주의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걸 증명했음에도 말이다. 그 만큼 아카데미는 인종, 여성, 소수자들의 사각지대였다. 세계 유수의 시상식·영화제들이 변화에 대한 요구를 외면하며 도태되어가는 지금, 아카데미는 생존을 위해 변혁을 택했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아카데미)이 27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올해 아카데미 풍경은 한 마디로 '껴안고 허물기'로 정리할 수 있다. 최고상에 해당되는 작품상 트로피가 애플TV플러스(이하 애플TV) 영화 ‘코다’ 품에 안겼다. 오스카 사상 처음으로 OTT 오리지널 콘텐츠에 작품상을 수여한 것이다. 주요 연기상 부문 역시 흑인 배우들이 수상했고, 세 번째 여성 감독상 수상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올해의 관전포인트는 ‘어느 OTT 플랫폼이 오스카 첫 작품상을 가져갈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부터 애플TV까지 라이벌 기업들의 자존심 싸움에 대한 흥미를 넘어 OTT가 세계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고 관심 또한 뜨겁기 때문이다. 콧대 높은 영화들이 어느 기업의, 어느 OTT 작품에 상을 수여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주인공은 '코다'였다. 청각 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벨파스트', '돈 룩 업', '드라이브 마이 카', '듄', 킹 리차드', '리코리쉬 피자', '나이트메어 앨리', '파워 오브 도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등 쟁쟁한 영화들을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이날 '코다'는 작품상 뿐 아니라 각색상(션 헤이더 감독), 출연 배우인 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오스카가 '코다'를 선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어 보인다. 경합을 벌인 OTT 영화들 중 논쟁적 요소가 적은 편이고, 여성과 소수자를 홀대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적합한 작품이다. 구색 맞추기 수상이라는 뜻이 아니다.'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오랜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작품성 또한 이견이 없을 영화를 찾는 아카데미에게 '코다'는 안성맞춤이었다.


실제 청각 장애 배우인 트로이 코처가 수화로 수상 소감을 전하고, 지난 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그의 트로피를 대신 들어주는 모습은 불과 수 년전의 오스카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아카데미 내 변화의 바람은 그 만큼 거셌다.


아카데미가 차별로 상징되는 보수주의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여러 수상에서 보인다. 특히 인종, 성차별 논란을 의식한 시상이 많았다. 동료 배우에 대한 폭행으로 그 의미가 퇴색돼 아쉽지만 윌 스미스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분명 의미를 갖는다. 흑인 남성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이번이 다섯 번째로, 오스카는 94년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흑인에게 곁을 내주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물론 백인 외 모든 인종에게 그렇다.) 가수 보다 배우의 삶에 더 충실한 윌 스미스지만 영화계는 유독 그의 수상에 인색했다. 화려한 필모그라피에 비해 그의 수상 내역은 초라한 편이다. '킹 라차드'는 운명적 작품이 됐다. 아카데미부터 골든글로브까지 올해 남우주연상만 5관왕을 차지했다.


여우조연상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데보스가 수상했다. 흑인 여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건 9번째다.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모두 흑인 배우가 가져갔다. 이 역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전히 숙제는 있다. 사실 변혁이라는 단어는 후한 평가다. '5번째 흑인 수상'과 같은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현재 오스카를 이끄는 건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다. 영화인들로 구성된 AMPAS는 아카데미의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곳으로, 노미네이트부터 정책 방향까지 오스카의 모든 걸 주관하고 있다. 회원 비율은 압도적으로 백인 남성들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서야 여성, 흑인 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발언권에 힘이 실릴 만큼의 권한을 갖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올해 오스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음에도 불구, 여주인공 레이첼 지글러는 후보는 커녕 초대 조차 받지 못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후보에 없는 배우는 초대할 의무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되려 비난 여론만 커졌다. 뒤늦게 시상자로 초대했지만, 라틴계 배우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의구심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어 보인다.대표적인 할리웃 여성 감독으로 꼽히는 제인 캠피온 역시 명성에 비해 뒤늦게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가 여성에게 감독상을 수여한 건 이번이 세 번째에 불과하다. 오스카가 그간 얼마나 여성 영화인들에게 인색했는지 보여주는 숫자다. 제인 캠피온은 '허트 로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82회)과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감독(93회)에 이어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 세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이제 아카데미는 매년 쇄신을 꾀할 분위기다.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쓴데는 아카데미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 영화인들의 호평, 입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올해 감지된 변화 역시 이들의 자성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AMPAS의 자성이 변화의 본질은 아니다. 뉴미디어 물결이 가져 온 필연적 흐름이고, 이는 시장에서의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OTT 콘텐츠는 인종과 국적, 성별 등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정통 극장 보다 강력한 힘을 갖게 된 OTT는 시장의 원리로 다양성을 갖추게 됐고, 이제 그 다양성은 그들만의 잔치에 머물렀던 백인 남성 중심의 영화제, 시상식의 성벽을 허물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할리웃의 캐스팅 계산법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은 콘텐츠 시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오스카가 OTT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넷플릭스를 거부하며 기싸움을 벌이던 칸 영화제는 최근 중국 숏폼 플랫폼 틱톡과 손 잡았다. OTT의 콘텐츠의 시장 지배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현재, OTT 홀대는 되려 칸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다행히 칸 역시 오스카와 마찬가지로 변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듯 하다. 이달 칸은 사상 처음으로 첫 여성 조직위원장(이리스 크노블로흐)을 선출했고, 2년 전에는 스파이크 리 감독을 심사위원장에 임명했다. 이 역시 칸 사상 첫 흑인 감독 심사위원장이다. |티브이데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