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이번엔 CIA 국장까지 출동…토라진 사우디에 미국 전전긍긍

페이지 정보

작성일 22-05-05

본문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동맹관계 무색해져

카슈끄지 사건 등 놓고 이견과 갈등 연속

사우디, 러시아·중국과 접근하는 모습까지

석유 증산 등 협조 필요해 달래보지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계속 심상찮은 가운데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중순 비밀리에 사우디를 방문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신문은 번스 국장이 중동의 핵심 안보 파트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나섰다는 양국 관계자들 말을 전하며, 그가 사우디 왕실이 라마단(금식월)에 거주하는 제다에서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한 미국 관리는 “좋은 대화를 나눴고, 전에 (빈살만 왕세자가) 미국 정부와 접촉했을 때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졌다”고 말했다. 국무부 부장관 출신인 번스 국장은 아랍어를 공부했고 중동에서도 여러 번 근무했다.


정보기관 수장이 동맹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외교 업무’를 할당받은 것은 그만큼 양국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양국은 석유 증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 예멘 내전, 이란 핵협상 등 여러 문제에서 번번이 부닥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고유가를 해결하려고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부탁했지만 별로 통하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휘발유 가격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더 심각해졌지만, 사우디는 석유 생산과 관련해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는 모습마저 보였다.


파열음은 양국의 접촉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빈살만 왕세자가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 통화 제의를 거절하고, 지난해 9월 만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얘기를 꺼내자 고성을 질렀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사우디 출신의 비판적 언론인 카슈끄지는 2018년 터키에서 납치·살해당했는데, 사우디 요원들이 저지른 사건의 배후가 빈살만 왕세자라는 것은 거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19년 11월 대선 토론회에서 카슈끄지 사건을 언급하며 사우디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한 게 양국 지도자들 관계가 틀어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지난해에도 여러 번 주요 관리들을 보내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3월에는 사우디가 위안화를 석유 대금으로 인정하는 것을 중국과 논의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의 동맹이 미국의 양대 전략적 경쟁 상대인 러시아 및 중국과 밀착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지난달 <뉴욕 타임스>는 사우디 국부 펀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차린 사모펀드에 20억달러(약 2조5천억원)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빈살만 왕세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를 예상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번스 국장이 양국 관계를 얼마나 해빙시켰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미국이 고통스러워하는 고유가 상황을 사우디가 즐기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우디는 고유가에 힘입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9.6% 성장했다.|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