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두 얼굴의 사우디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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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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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공연은 ‘사우디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하루 다섯번 코란 경전을 읽던 도시에 K팝이 울려 퍼지자 공연장에 몰려든 청춘 남녀 3만명이 열광했다. 플래시 켜진 스마트폰을 흔들며 한국어 떼창과 파도타기 응원으로 화답하는 무슬림 아미(BTS 팬클럽)는 서방의 젊은이와 다를 게 없었다. 이날 BTS 공연을 성사시킨 주인공은 사우디 차기 왕으로 부상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사우디 왕위는 지금껏 형제 상속으로 승계됐다. 7대인 현 국왕 살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하나같이 고령 등극이었다. 살만 국왕이 80세로 즉위한 2015년 당시 왕세제도 이미 60세를 넘긴 사촌동생 무크린이었다. 살만 국왕이 무크린을 몰아내고 32세 아들 빈 살만을 왕세자로 책봉하며 형제 상속 관행을 깼다.


▶젊은 후계자 빈 살만은 개혁 군주의 길을 천명했다. 2014년 국제 유가 폭락 사태를 지켜본 뒤 석유에 의존한 통치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경제·사회·문화를 대대적으로 수술하는 ‘비전 2030′ 청사진을 제시하며 홍해 자유관광지구, 서울의 44배에 이르는 미래 신도시 계획 등을 내놓았다. 농업 개혁에도 나서 사막엔 원형 농장 수천개가 들어섰다. 여성 운전과 남녀 동석 허용 같은 변화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K팝처럼 사우디 팝을 육성할 계획도 세웠다. 인천-리야드 직항도 올 연말 열릴 예정이다.


▶엊그제 영국에서 끝난 리브(LIV) 골프대회도 빈 살만 왕세자가 관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이 자금을 지원했다. 말 그대로 돈을 쏟아부었다. 1등 상금 400만달러, 꼴찌를 해도 어지간한 한국 골프대회 우승 상금인 12만달러(약 1억5000만원)를 받는다. PGA가 누리던 중계권 수입과 골프 산업 주도권을 노린 건가 했는데 전 세계 방송사들에 올해 대회 무료 중계를 허용했다. 빈 살만의 치적 쌓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개혁가 빈 살만의 이면에는 잔인한 절대군주의 모습이 겹쳐 있다. 권력 장악에 방해될 왕족들을 부정부패 혐의로 제거했다. 사우디 왕가에 비판적이던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혐의도 받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를 비판하자 러시아·중국과의 에너지·군사협력 강화로 맞섰다. 미국의 석유 증산 요청은 거부했다.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으로 바이든이 사우디와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BTS에 열광하는 사우디 젊은 세대가 빈 살만 리더십을 언제까지 용인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