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외교관이 남긴 음식만 먹었다”…가정부를 노예 만든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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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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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주재 사우디 외교관, 필리핀 가정부에 갑질

피해자 “매일 17시간 일…6개월 급여 280만원”

영국 대법 “현대판 노예…외교관 면책특권 없어”


영국에서 ‘노예노동’ 등 노동자 착취와 관련된 사안은 외교 면책특권의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외교관이 주재국에서 누려온 민·형사상 특권의 한계를 밝힌 판단이어서 주목된다.


영국 대법원은 런던에서 필리핀 가정부를 착취한 혐의로 고소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에 대해 “외교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필리핀 가정부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필리핀 가정부의 변호인은 “이런 종류의 판결은 세계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판결은 필리핀 가정부 조세핀 웡(30)이 2018년 “사우디 외교관 칼리드 바스파르가 현대판 노예제를 방불할 가혹한 조건에서 집안일을 시켰다”며 영국의 노동재판소에 제소한 데서 비롯했다. 그의 변호인은 그가 쓰레기를 버릴 때 말고는 집에만 머물며 폭언에 시달려야 했고 바스파르 가족이 남긴 음식을 먹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웡은 쉬는 날도 없이 매일 오전 7시에서 밤 11시 30분까지 일해야 했으며 호출 벨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다가 어느 때라도 부르면 달려가야 했다고 말했다. 또 2016년 사우디에서 영국으로 온 뒤에는 일곱 달 동안 임금을 주지 않다가 어느 날 여섯달치 월급이라며 계약한 것보다 훨씬 적은 1800파운드(280만원)을 줬고 그 이후엔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바스파라는 이에 대해 웡의 제소는 외교 면책특권에 따라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31조에서 외교관이 주재국에서 사법적 소추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며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 업무와 무관한 상업적 활동은 민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영국 대법원은 법관 2대1의 찬성으로 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바스파르가 웡을 착취한 것은 ‘상업적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면책특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판결문에서 웡의 주장이 맞다면 “현대판 노예”라고 할 수 있다며, 거의 2년에 걸친 노동력 착취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실행된 상업적 활동”이라고 밝혔다.


웡의 변호인 누스라타 우딘은 “이번 판결은 의뢰인을 위한 정의이며, 외교관에게 착취당할 위험에 있는 모든 잠재적 피해자를 위한 정의”라고 환영했다. 반면 바스파르 변호인은 논평을 거부했다. 런던 주재 사우디 대사관도 언론의 논평 요구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