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150부작 아침드라마의 축약판 '블랙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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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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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블랙의 신부'(연출 김정민, 극본 이근영)의 여주인공 서혜승(김희선)은 삶이 기구한 여자다. 학생 시절 사귀던 애인은 잠수 이별을, 커리어를 포기해가며 헌신했던 가정은 한순간 풍비박산이 난다. 남편은 젊은 여자 변호사 진유희(정유진)와 바람이 나고, 분노할 틈도 없이 불륜녀의 배신으로 전 재산을 잃는다. 이 일로 남편은 자살을 하고, 신분상승을 노리는 불륜녀는 사사건건 혜승을 겁박한다. 급기야는 애지중지 키운 딸마저 교통사고를 위장해 병원 신세를 지게 한다. 자신 역시 납치를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와 동시에 혜승은 놀라운 여자다. 결혼 후 꽤 오랜 기간 경력이 단절 됐지만 명문대 겸임 교수가 되고, 돈 많고 명망 좋은 두 남자가 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 차석진(박훈)은  다시 혜승의 곁을 지키며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고, "여자는 믿지 않는"다던 재계 30위권의 아이티 기업 회사 대표 이형주(이현욱)의 얼어 버린 마음마저 녹여버린다. 


이러한 혜승의 서사는 낯설지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애 딸린 아줌마가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결말. 맞다. 아침드라마에서 많이 봐온 전개다. 여주인공을 둘러싼 음모는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이 캔디 같은 여성은 남자 덕분에 모든 위기를 잘도 헤쳐간다. 혜승과 적대적 관계인 불륜녀 진유희는 또 어떤가. 악녀의 전형성을 띠며 미인계로 남자를 유혹해 신분상승을 노리고, 욕망과 소유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블랙의 신부'는 김희선이라는 이름 석 자에 대한 신뢰로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들지만, 1회부터 넘쳐나는 진부함과 가벼움으로 완주하기가 쉽지가 않다. 


과거 많은 아침 드라마가 MBC '밥줘'처럼 전업주부인 여주인공이 불륜의 피해자가 되는 이야기를 그리곤 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좋은 딸'이나 '좋은 며느리'로 불리는 여성상을 섞어 의협심을 불어넣었다. 혜승 역시 '좋은 딸'이자 '좋은 엄마', 그리고 '좋은 과외 선생님'이다. 불륜녀 진유희도 아침드라마 속 악녀의 전형성을 고스란히 갖는다. 욕망과 소유욕을 가면 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지막 회쯤에는  당연히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이한다. 욕망의 근원 역시 결핍에서 오는 야욕이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철 지난 여성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블랙의 신부'는 당연히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공개 나흘 째지만 톱10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 '지옥' 'D.P.'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여러 수작을 남긴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에 오점으로 남을 만한 작품이다. 김정민 감독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 어떤 시청자가 저들의 욕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타당한 것으로 볼지 의문이다. 자책없이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을 청부하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있다. 마땅한 죄의식조차 지워진 욕망의 둘레는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 


극본을 맡은 이근영 작가의 전작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그의 전 집필작들은 '나도 엄마야' '어머님은 내 며느리' '장미의 전쟁' 등 바로 아침드라마다. 플랫폼을 바꿔도 아침드라마적인 색깔은 버리지 않는다. 특히 150부작 아침드라마 전개를 8부작에 축약하다 보니 이야기가 툭툭 끊기고 신이 바뀔 때마다 앵글도 부자연스럽다. 여기에 장면 장면마다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다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과장돼 몰입을 방해한다.  특히 악녀 진유희의 연기는 요즘 보기 어려운 오버스러운 행태를 취한다. 가까스로 마지막회에 도달했을 때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김희선은 도대체 왜 '블랙의 신부'에?"|아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