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석유 패권전쟁, 동맹에서 경쟁자 된 미국과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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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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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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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운전자라면 '기름값' 문제로 한번쯤 고민해보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2022년 여름,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유가에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이러한 미친 유가 폭등의 원인은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지난 3월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을 금지하는 경제 제재를 단행하며 석유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전세계의 유가가 폭등하면서 덩달아 물가도 상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미국 역시 40년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는 충격을 감수해야 했다. 막연히 우리에게는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위 삶의 일상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현실적 타격로 다가오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왜 유가에 주목해야 되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들인 '신 석유 패권 전쟁'의 이면에는 바로 대한민국과 세계의 경제-역사 관련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8월 2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58회에서는 '오일쇼크의 악몽-석유패권전쟁의 역사'를 주제로 중동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교수가 강연을 펼쳤다.

 

2021년 기준 세계 3대 산유국은 미국,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다. 특히 석유 수출국 기구인 OPEC의 주도국이기도 한 사우디는 기름 1리터가 생수보다 싼 것으로 유명하다. 사우디는 유가 안정을 해결할 키를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국가로 꼽힌다.

 

사우디는 본래 미국의 최우방국으로 알려졌지만 석유 패권전쟁을 전후하여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우디는 유가안정을 위한 미국의 협조 제안을 거절하는가 하면, 미국의 주도로 국제사회 퇴출 압박을 받고있는 러시아를 두둔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강대국들간의 신냉전 체제 구도속에서 사우디가 여러 나라들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을 이용하여 석유 패권 전쟁의 주도권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유는 인류역사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중요하게 사용됐을까. 초창기에 고래기름을 주로 사용하던 인류는, 유럽이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고 1853년에 석유기름에서 추출한 등유를 연료로 삼는 현대적 등유램프가 발명되면서 석유의 소비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1859년 펜실베니아 타이터스빌 인근에서 거대한 유정이 발견됐다. 이때부터 대량의 석유를 양조 위스키통인 '배럴'에 담기 시작하면서 이후 석유의 표준단위(bbl, 1배럴=159리터)를 의미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된다.

 

1865년 언론인 J.H,A 보온은 "석유는 윤활유,기술, 가정생활 등 온갖 분야에서 필수불가결한 물건이 됐다. 만약 석유가 없어진다면 우리의 문명 자체가 거꾸로 갈 것"이라며 석유가 인류 역사에 미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1879년 에디슨이 전기 조명을 발견하며 석유 업계에서는 석유의 인기가 주춤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독일, 1886년), 라이트 형제가 만들어낸 동력 비행기(1903) 등이 등장하며 오히려 석유의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석유가 없었다면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었을 것이다. 낮은 유가 덕분에 석유는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었고, '석유산업이 세상을 바꿨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자연히 석유업자들은 새로운 석유 생산지를 모색하게 됐다. 그렇게 찾아낸 지역이 바로 중동이었다. 오늘날 세계 유가를 뒤흔드는 주 무대이자 석유패권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중동에서 최초로 석유가 발견된 것은 1908년 이란의 마스메드 솔레이만 유전이었다. 1차대전을 거치며 전함의 동력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하면서 전략물자가 된 석유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1932년에는 당시 영국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가 탄생한다.사우디 지역은 원래 오스만제국의 영역이었으나 이 땅을 탐낸 영국은 압둘 아지즈 국왕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여 강력한 왕권국가인 사우디 왕국을 건설했다.

 

초창기에는 아직 사우디에서 석유가 발견되기 전이었다. 1930년대 세계를 덮친 경제대공황으로 재정난을 겪게된 사우디는 우방인 영국에게 먼저 석유채굴권 판매를 제시했으나 석유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영국은 이를 거절했다. 대신 손을 내밀며 사우디의 채굴권을 구입한 것이 미국의 석유회사인 소칼(SOCAL, 현재는 셰브론, CHEVRON)이었다.

 

초창기에는 실패를 거듭하며 사우디에서의 석유 채굴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1938년 담맘 7호점에서 마침내 상업적으로 활용가능한 석유가 발견되며 일대 전환점을 맞이한다. 매년 50만 배럴의 석유생산을 시작으로 1년만에 400만 배럴까지 생산량이 급증했다. 현재 대한민국이 하루에 사용하는 석유양이 270~290만 배럴으로 장충체육관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석유채굴을 통하여 사우디의 재정난을 미국이 해결해주면서 양국은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여기에 사우디가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한 1939년부터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은 미국은 '영미석유협약'을 맺고 각 산유국의 생산량과 유가를 결정하고 중동지역의 석유패권을 나누는 데 합의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5년 얄타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던 도중,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 도착한 군함 퀸시호에서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만난 것은, 미국과 사우디의 본격적인 '석유동맹'의 시작을 알린 장면으로 꼽힌다.

 

미국의 4개회사가 합작한 '아람코'는 사우디에서의 석유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며 2021년 EIA기준 약 11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며 전세계 생산량의 무려 12%를 차지하고 있다. 2022년 아람코의 시가 총액은 무려 2조 4300억달러(3117조 4470억원)에 이른다. 아람코는 지금도 사우디인들이 가장 가고싶어하는 회사로 꼽히며 대한민국의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석유산업이 발전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차츰 서구권 석유회사들의 불공정한 이익 배분에 불만을 품게 된다. 영국 석유회사가 장악했던 이란은 1951년 석유 국유화를 단행하고, 이는 중동 산유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중동국가들은 1960년 석유수출기구 'OPEC'을 설립했다. 사우디의 석유광물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는 기구 운영를 사실상 주도하며 석유이권을 찾는데 앞장선 인물로 '석유황제 야마니'라는 애칭을 얻었다.

 

1970년대 이스라엘과 아랍의 중동전쟁에서 비롯된 '오일쇼크'는 '석유의 정치적 무기화'가 이루어진 계기로 꼽힌다. 1970-80년대 전세계 석유시장에서 OPEC의 석유매장 비율은 60-80%에 이르렀다. 아랍 산유국들은 이란을 제외하고 석유수출 중단 결정을 내리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구권을 압박했다. 당시 야마니 장관은 인터뷰에서 "우리가 석유 생산량을 줄이면 유럽이나 일본, 미국이 살아남을수 있겠는가. 미국이 군사행동을 생각한다면 자살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일쇼크는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름부족 현상으로 말이 끄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웃픈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저연료 경차 개발이 활성화되어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오히려 오일쇼크로 이득을 봤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6년 12월 이듬해 유가를 결정하는 OPEC회의에서 이란은 유가인상을 추진했으나, 미국과 사우디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된다. 이는 이란과 중동정세에도 큰 후폭풍을 몰고 오는데, 이란의 경제난이 심화되며 1979년 친미정권이었던 파흘라비 왕조가 몰락하며 호메이니가 이끄는 반미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집권한 것.

 

종전 사우디와 이란을 양축으로 하는 '쌍둥이 기둥정책'을 기반으로 하던 미국의 대 중동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했고, 미국은 이란과 단교하면서 사우디와 더욱 밀착하게 된다. 또한 1980년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의 지분 100%를 확보하고 국영기업 사우디 아람코로 전환하며 비로소 완전한 석유 산업 독립을 쟁취하고 더욱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됐다.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는 그해 1월 페르시아만 지역의 지배권에 대한 어떤 외부세력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카터 독트린'을 선언한다. 이는 사실상 사우디의 안보를 미국이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미국의 유가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중동 정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로 이란-이라크의 8년전쟁, 제1차 걸프전 등 혼란한 중동정세 속에서도 미국은 적극적인 개입으로 전세계에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유도했으며, 사우디에 미군을 주둔시켜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이처럼 돈독하던 미국-사우디 70년 동맹 관계에 균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1년 911 테러였다. 당시 테러범 19인중 사우디출신이 15명이나 포함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인들이 사우디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보복에 나선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잇달아 일으키고, 2011년에는 테러의 주범 빈 라덴을 끝내 찾아내 사살했다. 하지만 전쟁에 반대한 사우디는 석유생산을 줄여 유가를 상승시키며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미국의 '셰일 혁명'은 사우디의 석유 패권 독점에 큰 전환점을 초래했다. 이전까지 유가 조정이 거의 사우디의 의지로 이뤄졌다면, 미국이 셰일 오일 채굴에 성공하며 일약 세계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이제 100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천연가스를 확보했다. '미국이 만든 에너지'보다 더 큰 혁신의 약속은 없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국과 사우디가 이제 '동맹'에서 석유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된 것을 의미한다.

 

2018년에는 사우디 출신으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하던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 사우디 왕실과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이었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됐다. 언론은 카슈끄지가 영사관에서 고문을 받고 암살당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미국 CIA는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자로 사우디 왕세자이자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을 지목하며 파문이 일었다. 바이든 현 대통령은 집권하기 이전인 2019년, 암살 배후를 부정하는 빈 살만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과 이란간의 핵 협상도 사우디를 자극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5년 이란이 평화적으로 핵을 사용한다면 각종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이란 핵 협정'에 합의한다. 이는 이란과 적대관계이던 사우디의 반발을 불러왔다. 또한 2019년에는 사우디 아람코 드론 폭발사고 당시 트럼프 정부가 "우리는 페르시아만에 있을 필요가 없다"라며 그동안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해주던 카터 독트린을 사실상 부정하는 선언을 하며 사우디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된 틈을 타 사우디에게 손을 내민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사우디는 최근 두 나라와 적극적으로 밀착하며 우호관계를 늘려가고 있다. 사우디는 지금껏 달러로 거래해왔던 석유 대금을 중국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다고 의향을 내비치며, 미국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창 미중패권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의 리더십이 약화된 미국의 경제적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는 또다른 위기다.

 

최근 양국의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직접 방문하여 고유가 문제에 대한 협조를 구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더 이상의 석유 증산 여력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바이든이 떠난 이후 보란 듯이 러시아와 접촉하여 원유 생산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는 8월에 열리는 OPEC 회담은 세계 석유시장의 패권을 흔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강대국들의 행보와 국제정세는 석유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여파는 전세계 국민들의 일상에도 여파로 돌아간다.

 

'석기시대가 돌이 없어서 끝나지 않았듯이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석유시대도 끝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적극적으로 석유패권주의 시대를 주도한 사우디의 석유장관 야마니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게 왠지 의미심장하다. 석유산업은 인류의 문명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람의 인생이나 국제관계도 그렇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 자원이 무기이자 패권이 된 시대,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흐름에 일비일희하지않고 긴 안목에서 신중하고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ㅣ오마이뉴스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