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英 엘리자베스 2세 여왕 96세로 서거..장남 찰스가 국왕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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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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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70년 최장수 英 군주 기록

남편 필립공 서거 이후 급속도로 쇠약

찰스 왕세자가 즉위, 정부와 국장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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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70년의 재위기간으로 영국 역사상 최장기간 집권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장남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 왕좌를 이어받았다. 앞서 여왕은 지난해 남편인 필립공이 서거한 이후 급격히 쇠약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왕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서거했다고 밝혔다. 여왕은 평소처럼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으며, 불과 이틀 전인 6일에는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인 7일 오후에 왕실에서 여왕이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여왕은 지난해 4월에 70여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졌으며, 10월에는 하루 입원을 하고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최근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지팡이를 짚고 일정을 임박해서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왕실은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자동 승계해 찰스 3세로 즉위한다고 밝혔다. 찰스 3세는 이미 공식적인 영국의 국왕이지만 관례에 따라 대관식은 몇 개월 뒤에나 열릴 것으로 보인다. 찰스 3세 부부는 이날 밸모럴성에 머문 뒤 9일 런던으로 이동해 국장을 준비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도 '런던브리지 작전'으로 명명된 여왕 서거 시 계획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된다. 국장은 여왕 서거 후 10일째 되는 날에 치러진다.


찰스 3세는 성명에서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며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애도와 변화의 기간,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딜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여왕은 세계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트러스 총리는 "여왕은 바위였고 그 위에서 현대 영국이 건설됐다"며 "여왕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힘을 줬다. 여왕은 바로 영국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러스 총리는 "우리는 찰스 3세 국왕에게 충성심과 헌신을 바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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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영국 국민들은 오랜기간 함께 해온 여왕의 서거에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밸모럴성과 런던 버킹엄궁 등 앞에는 애도하는 인파가 모였고 방송 진행자들은 가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여왕 서거에 영국뿐 아니라 각국 전·현직 정상과 프란치스코 교황 등 주요 인사들이 애도를 쏟아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인 질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여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엄한 지도자였으며, 기반암과 같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지속적으로 심화시켰다"며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추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찰스 3세와도 우정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방 중이던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살 젊은 나이에 케냐에서 왕위에 오른 뒤 70년 216일간 재위했다. 영국 최장 재위 군주일 뿐 아니라 기록이 확인되는 독립국의 군주들 가운데 프랑스 루이 14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기간 왕위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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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15명의 총리가 거쳐 간 이 기간 영국은 전후 궁핍한 세월을 견뎌야 했고 냉전과 공산권 붕괴,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동안 영국왕실을 지켜온 여왕과 필립공이 모두 서거하면서 영국왕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질 전망이다. 여왕은 슬하에 찰스 3세,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자 등 손자녀 8명, 증손자녀 12명을 뒀으며, 찰스 왕세자와 자녀들의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는 앞서 다이애나비의 이혼으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이애나비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여왕은 입장을 늦게 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엔 해리 왕자가 왕실 밖으로 뛰어나가서는 가족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아끼던 차남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전하'라는 호칭까지 박탈당했다.


한편 여왕은 지난 1999년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1883년 두 나라가 수교한 지 1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여왕은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고 사과나무를 심었으며 안동 하회마을, 서울 인사동 거리, 이화여대를 방문해 한국 전통문화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나타냈다.ㅣ아시아경제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