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AMA, ‘K팝 부문’ 신설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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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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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미국 대중음악상 시상식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 이하 AMA) 측에서 ‘페이버릿 K팝 아티스트’ 부문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K팝상’이다. 신설 첫 해 후보론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 등이 올랐다.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대중음악상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AMA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하자 바로 수많은 해석들이 뒤따랐다. 그런데 의외로 상당수가 ‘K팝상’은 오히려 K팝을 견제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의혹들이었다.


미국 최대 영화상 아카데미상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1929년 시작된 아카데미상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로 진행되는 외국어영화들에도 ‘특별상’ 명목으로 상을 주기 시작한 게 1947년부터다. 그러다 1956년부턴 다른 부문상들처럼 제대로 5편 후보를 뽑아 경쟁시키는 ‘외국어영화상’으로 거듭났다. 처음엔 당연히 비영어권 영화들에 대한 배려처럼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자 실제 효과가 드러났다.


단적으로, 1956년부터 1995년까지 40년 동안 외국어영화가 본상에 해당하는 ‘작품상’ 후보로 오른 건 ‘Z’와 ‘우트반드라나’, ‘외침과 속삭임’ 등 고작 3편뿐이었다. 나머진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게토화돼 소위 ‘그 물에서만 놀았다.’ 이에 대해 별 비판도 없었다. 예술적 성과를 인정해 이미 부문상을 준 외국어영화들에 왜 본상까지 더 얹어줘야 하느냐는 인식이 아카데미상 투표권자들은 물론 그를 지켜보는 미국대중에까지도 납득됐단 얘기다. 이 같은 인식은 2021년 한국영화 ‘기생충’이 외국어영화로서 최초로 아카데미상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하자 이를 비판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대통령 촌평으로까지 끈덕지게 이어진다.


그렇게 불만들이 있으면 미국 또는 미국과 문화정서를 나눈다는 영어권 국가 영화들까지만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도록 규정을 달면 될 일인데, 또 그건 원치 않는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이민국가로서 미국의 ‘다양성과 포용성’ 기조 탓에 언어나 국적, 인종 등으로 후보선정 단계부터 제한을 뒀을 때 일어날 반발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또 아카데미상도 유럽의 3대 국제영화제처럼 글로벌에 열려있는 권위 있는 국제영화상으로 거듭나고 싶었던 탓도 존재한다.


사실 외국어영화상이 처음 등장했던 1950년대는 미국영화산업이 밀려들어오는 해외영화들에 위협을 받던 때다. 1950년대 비트세대, 1960년대 히피세대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도시 젊은 층은 이전처럼 자국의 현실 도피적 엔터테인먼트에 몰두하기보다 인간 본질과 그 딜레마에 다가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영화들에 관심 갖고 수요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쉽게, 새로운 문화적 유행들은 이미 그쪽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니 아카데미상도 월드시네마 경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동시에 미국영화산업도 보호해야 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이 같은 게토화 전략으로 돌파하려 했단 인상이 짙다.


그리고 이제 AMA의 ‘K팝상’이다. 둘러싼 상황은 1950년대 미국영화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K팝이란 ‘외세의 습격’이 ‘글로벌 현상’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와중이다. 그리고 많은 점에서 AMA는 더더욱 이 같은 흐름에 취약한 상이다. 자신들이 투표권을 주는 회원들 의사에 한해서만 후보자와 수상자가 결정되는 아카데미상이나 그래미상과 달리, AMA는 일반대중 투표로만 수상자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다른 상들은 소위 ‘업계인’들 선에서 자국 대중문화산업에 위협이 될 듯한 흐름엔 게이트 키핑이 가능하지만 AMA는 그러지 못한단 뜻이다. 이런 식이면 특히 강력한 팬덤으로 잘 알려진 K팝이 계속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 ‘K팝상’ 신설도 뚜렷한 ‘속내’가 있단 인상이 짙단 것.


물론 그런저런 속내와는 관계없이, ‘K팝상’ 효과를 지금 미리 단언하긴 무리다. 이제 ‘국제장편영화상’으로 이름을 바꾼 외국어영화상조차 게토화 효과가 떨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다양성과 포용성’ 중심 PC 무드가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거세지면서 외국어영화가 외국어영화상과 작품상에 함께 후보로 지명되는 경우도 크게 늘었고, 마침내 2021년 ‘기생충’이 두 부문 모두 수상하는 쾌거까지 거뒀다. 유사한 분위기가 AMA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 게토화 효과는 딱히 없이 소위 ‘상만 늘어난’ 결과가 될 수도 있단 뜻이다. 비판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본 뒤 시작해도 늦지 않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현재 AMA 각 부문상들 중 성격상 ‘K팝상’에 가장 가까운 건 1998년부터 시작된 ‘페이버릿 라틴 아티스트’ 부문이다. 말 그대로 라틴, 즉 스페인어권인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아티스트들을 특화시킨 부문. 그런데 여기서 ‘라틴 아티스트’의 범주가 꽤나 애매하다.


대부분 샤키라나 배드 버니 등 라틴아메리카 출신 아티스트들이 수상자로 선택되곤 하지만, 제니퍼 로페즈 같은 복잡한 입장의 아티스트도 이미 2번을 타갔다. 로페즈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부모를 뒀을 뿐 미국 뉴욕서 나고 자란 엄연한 미국시민이다. 그녀의 음악커리어 역시 미국 음악회사 기반으로 성립되고 있다. 그럼 결국 ‘인종적으로만 라틴아메리카권이면 된다’는 식인데, ‘K팝상’도 같은 개념이라면 미국서 나고 자란 미국시민 재미교포 2, 3세가 미국 음악 회사를 통해 내놓은 음악도 K팝으로 볼 수 있단 얘기가 된다. 과연 이런 식이어도 되는 걸까. 아니 그 이전, K팝이란 과연 어떤 식으로 규정될 수 있는 음악 상품인지 합의된 부분이라도 있을까 말이다. 단적으로, K팝은 ‘장르’인가, ‘스타일’인가, 아니면 ‘국적’인가.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합의된 부분이 없다.


이처럼 AMA의 이번 ‘K팝상’ 신설은 꽤나 까다로운 화두들을 던져준다. 향후 꾸준히 이런저런 잡음을 만들어낼 소지도 크다. 더 큰 문제는, 아직 저 까다로운 화두들이나 딜레마들이 제대로 해소되기도 전 ‘K팝상’ 같은 발상이 다른 많은 시상식들로 번져나갔을 때다. 이미 AMA 외에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등에서도 K팝 부문을 따로 만든 바 있다. 그럼 이들이 불러일으킬 각종 논란들에 국내 K팝 씬은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한창 덩치가 커져 가는 대중문화산업이란 이처럼 복잡하고 예민한 사안들이 겹겹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K팝 씬 전체의 기민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스포츠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