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기약 없이 떠나는 우크라 피란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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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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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침공 임박설에 탈출 행렬

폴란드 “전쟁하면 100만명”

친러 반군도 주민 대피령

러시아 “이미 5만여명 유입”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살던 이리나 가브리야카의 가족은 현재 폴란드 프셰미실의 한 수도원에 머물고 있다. 프셰미실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10㎞ 떨어진 인구 6만명의 소도시다. 가브리야카는 우크라이나 학교들이 비상대피 훈련을 시작하자 위기를 실감하고 9세, 5세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가브리야카는 “일주일가량만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피란이 길어질 것을 대비한 듯 큰 여행가방을 들고 왔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고조되면서 폴란드 당국이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비하고 있다고 도이체벨레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난민들을 위한 기본 인프라와 수송, 아동교육, 의료 대책 등을 준비할 실무협의체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마치에이 볼시크 폴란드 내무부 차관은 앞서 “전쟁이 발생하면 최대 100만명의 난민이 폴란드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에는 이미 100만명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인 150만명이 고향을 떠났는데 피란민 상당수가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폴란드로 향했다.


이들에 대한 폴란드인의 시선은 현재까지 우호적이다. 폴란드는 독일, 영국 등 국외로 나가는 노동자가 많아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 인력 에이전시 그레미 퍼스널은 코로나19 회복 등으로 올해 폴란드의 이주노동자 수요가 1년 전보다 5배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가제타 비보르차는 “난민에 대한 임시지원과 폴란드에 머물면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거지가 부족해질 우려가 가장 높다. 정치적 반발도 문제다. 민족주의 성향의 폴란드 보수정권이 2015~2016년 시리아 내전으로 촉발된 난민위기 당시 유럽연합(EU)의 난민 수용을 반대했던 점도 우려되는 요인이다.


친러 반군이 우크라이나군 공격설을 퍼뜨리며 주민 대피령을 내리자 러시아 쪽으로 피란 간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미 막막함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이제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약 5만3000명이 자국으로 유입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1㎞ 떨어진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주의 스포츠센터와 요양원 등은 임시 피란민 수용소로 바뀌었다. 수용공간이 부족해진 탓에 관리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피란민에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라고 종용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도네츠크주 데발체베에서 6개월 된 아기를 안고 온 발렌티나는 로스토프에서 내륙으로 다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도착해서야 알게 되자 “우린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어디를 가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데발체베는 2015년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사이 격전이 벌어져 쑥대밭이 된 도시이다.


타간로크의 한 60대 현지 주민은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사태를 떠올리며 “다 끝났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전운이 고조되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가리켜 “이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ㅣ경향신문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