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만과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중국·대만, 같은 말 다른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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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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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 처한 상황은 (우크라이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난달 25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


“대만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지난달 2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중국과 대만이 서로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의미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차이 총통은 이 말을 한 뒤 “우리가 무너지면 남중국해 정세가 요동치기 때문에, 서방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대만의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전 세계적인 경제 충격이 온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본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도자가 직접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반면 왕 부장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고, 우크라이나 문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간 분쟁”이라서 두 국가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만이 언젠간 조국(중국)의 품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는 말도 했다. 중국과 대만이 한 나라기 때문에, 중국이 대만을 치더라도 ‘다른 나라’를 침범한 러시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대만이 다음의 우크라이나’라는 세간의 우려에 반응하는 양국의 인식 차이는 이처럼 확연하다. 대만은 정치권과 국민 모두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끼고 지도자가 국민을 달래는 발언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을 침공하더라도 내정 문제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중국이 대만과 설정한 ‘양안관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커진 불안감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극대화된 양상이다.



◆‘실체화된 위협’ 느끼는 대만 국민들


대만 국민에게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이라는 이야기는 실체화한 위협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 대만에서 5, 6월 예정된 민간인 훈련 프로그램 예약이 1시간 만에 만석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F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대만에 경종을 울리는 신호로 작용했으며, 대만에서는 중국 정부가 (대만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무력으로 침범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2017년에 4개월로 단축된 대만 국민의 병역 의무를 1년 이상으로 다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차이 총통은 대만 국방부에 이 같은 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며, 대만 TVBS 방송이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8%가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6%는 ‘여성도 병역 의무에 동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병역기간 연장 시도가 이뤄지고, 국민 대다수가 이를 찬성할 정도로 진지하게 위협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영국 주간지 타임은 이미 1년 복무를 마친 한 대만 남성이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다시 복무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4개월의 병역을 마친 27세 엔지니어 에릭 정씨도 “대만 국민들은 아직 싸울 준비가 완전히 되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심리가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란 증거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인권운동가 블라디미르 오세치킨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장악하는 방안을 고려했다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기밀보고서 내용을 최근 폭로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이 보고서엔 시 주석이 올해 가을 20차 당대회를 치르기 전 대만을 침공해 접수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자신의 주석직 3연임을 순조롭게 확정 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시 주석은 3연임 결정이 가까워진 지난해부터 대만과 통일하겠다는 말을 수차례 해 왔다. 지난해 9월 연설에서는 대만과의 통일을 언급하며 “조국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임무는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선 7월에는 대만의 독립 도모를 단호히 “분쇄하겠다”고까지 했다.


◆“우크라 항거가 中에 교훈 줬을 것”


중국이 실제 대만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양국의 군사력 차이는 비교가 무색할 만큼 크다.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은 “중국이 침공을 개시하면 미국이 개입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을 정도다.


중국은 대만 침공 시 단기전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이 지난해 11월 전문가들과 작성한 ‘6단계 시나리오’에서는 중국이 대만의 부속도서인 마쭈섬·진먼섬을 우선 점령하고 해역을 봉쇄해 속전속결에 나설 것으로 봤다. 이후 대만 주요 전략·기반 시설을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한 뒤 대만 본토에 대규모 공수부대를 파견한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이 단계까지 불과 수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침공이 중국의 ‘야욕’에 영향을 줬을까.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예상보다 지지부진한 전쟁 양상과 강경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중국의 계획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폴리티코는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는 교훈적인 이야기처럼 전개되고 있다”며 “(러시아의 침공이 없었다면) 21세기에 잔혹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매체는 우선 대만과 우크라이나의 차이점으로 미국의 ‘수호 의지’를 꼽았다. 미국에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와 세계 1위 반도체 생산기업 TSMC를 보유한 대만의 위상은 다르다. 대만은 TSMC를 통해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TSMC가 2020년 중국 정보기술(IT)기업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자 미국이 대체물량을 확보해 줬을 정도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 달라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했다. 우크라이나에서 공중전이 벌어질 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 간 전면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리처드 베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들어주면 나토와 러시아 간 직접 전쟁이 벌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푸틴은 비행금지구역 선포를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최후통첩이라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대만해협을 통해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 주석과 통화에서 중국의 대만해협 도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대만해협 내 분쟁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중국과 대만이 폭 180㎞의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어 중국의 도발을 사전에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역액 1900조’ 美·EU 외면 어려워


서방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의 무역 상황은 러시아보다도 경제 제재에 한층 민감할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 중국은 유럽연합(EU), 미국과 각각 총 무역액 5조3500억위안(약 1001조원), 4조8800억위안(약 913조원)을 기록했다. 총 무역액(39조1000억위안)의 25%를 넘으며, 권역별로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5조6700억위안)에 이어 두 번째다. 폴리티코는 “1조달러가 넘는 중국의 국채를 활용하면 서방의 제재를 상쇄하겠지만, 제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경제 제재를 언급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최근 중국을 향해 “(러시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의 깊게 보기를 바란다”며 “전 세계가 단결해 러시아에 매우 큰 제재를 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종신 집권’을 노리는 시 주석이 위험 부담을 안고 침공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이란 시각도 나오지만, 돌발 상황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폴리티코는 “시 주석이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일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며 “그가 대만 통일 전쟁으로 제국 재건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절대 권력’조차도 달성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발견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