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재해석·고증 사이…글로벌 시대, 더욱 엄격해진 ‘사극’ 향한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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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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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판 ‘스카이캐슬’로 흥미 유발한 ‘슈룹’

일부 대사, 설정 등 고증 문제 지적 받아

퓨전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상의 캐릭터 또는 설정을 가미해 재미를 선사한다. 다소 무거운 흐름으로 인식되던 전통 사극과 달리 이러한 재미는 젊은 층의 관심을 쉽게 끌어들인다.퓨전 사극의 또다른 매력은 극의 주체를 다양화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상황 변주가 가능하다 점이다. 전통 사극이 역사를 재해석함에 있어 엄격함이 존재한다면, 퓨전 사극은 이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흐름은 전통 사극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최근 시대적 배경의 한계로 인해 수동적으로 표현되던 사극 속 여성들이 달라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장르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산과 궁녀 덕임의 로맨스를 다룬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주체적 삶을 꿈꾸는 덕임의 고민이 녹아있었다. 덕임은 물론, 궁녀들이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임하는 모습들도 담겼었다.

정통 사극 ‘태종 이방원’에서는 그간의 작품들에선 조명하지 않았던 이방원 아내 민씨의 역할을 부각하기도 했었다.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한계는 물론 있지만,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청자들의 달라진 인식을 반영하는 유연한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tvN ‘슈룹’ 역시도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그간 늘 봐왔던 왕이 아닌 중전들의 암투는 또 어떤 긴장감과 흥미를 선사하게 될지 기대를 모았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이 내세운 왕실 교육법, 엄마들의 교육열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기대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조선판 ‘스카이캐슬’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겨나는 등 퓨전 사극 ‘슈룹’이 다루는 색다른 세계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이어졌다.그러나 최근 퓨전 사극을 두고 사례가 급격히 쌓이고 있는 고증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또 벌어졌다. 중국식 표현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이어지고, 디테일이 떨어지는 부분은 거침없이 지적하며 고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슈룹’은 방송이 시작되자 일부 장면과 자막 등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앞서 방송에서 황귀인(옥자연 분)이 의성군(강찬희 분)에게 배동 선발에 응시하라고 명령하며 “전하께 네 실력을 보여드릴 기회라고 생각해라. 네 말대로 전하께서 가장 먼저 품에 안은 자식은 너다. 응시만 해라. 그다음은 이 어미가 알아서 하겠다. 물귀원주. 원래 네 것이었으니 그 자리를 되돌려줄 것”이라고 말하는 가운데, ‘물귀원주’가 한자 ‘物歸原主’가 아닌 중국어 표기법인 ‘物归原主’로 설명이 됐던 것.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일자 이후 방송에서는 수정된 자막이 송출됐다.

이 외에도 중전이 대군들을 “내 새끼”로 칭하고, 왕자들이 세자를 향해 중전을 지칭하면서 “너희 엄마”라고 표현하는 등의 일부 디테일들도 사실과는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았다. 더불어 중전의 권위가 약하게 그려지면서 후궁들과 치열하게 암투를 벌이는 일련의 흐름들이 중국 고장극을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지적들은 퓨전 사극이 늘 마주하는 딜레마기도 하다. ‘철인왕후’와 같은 판타지와 접목한 퓨전 사극 역시도 현대에서 넘어간 캐릭터의 일부 언행이 조선을 배경으로 삼는 작품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재해석 또는 상상력과 사실 사이 괴리감이 생기곤 했던 것이다.더욱이 최근에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을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복을 비롯해 한국의 것을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문화동북공정 논란이 이어지며 형성된 반중 정서도 물론 하나의 이유다. 여기에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한국의 것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인식까지 생겨난 것이다.

최근 ‘작은 아씨들’이 극 중 한 인물이 “한국 군인은 베트콩 병사 20명을 죽일 수 있다. 어떤 군인은 10명까지 죽였다”, “한국 군인은 베트남 전쟁 영웅이다”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돼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방영이 중단된 바 있다. 이렇듯 국내 콘텐츠들이 글로벌 시청자들을 겨냥하면서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더욱 늘어나는 등 국내 콘텐츠들의 책임감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극 장르에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사극 장르를 향해 더욱 무게감 있고, 섬세한 자세가 요구되면서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이 더욱 매서워진 만큼 그들의 높은 잣대를 충족하기 위한 한층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진 시점이다.|데일리안|